아티스트/은밀하게 위대하게

영화 속 간첩들, 이념의 전사서 때묻은 생활인으로

이뽄 2012. 9. 26. 10:10

 

 

“세상 참 좋아졌네, (간첩들이) 비행기로 왔다 갔다 하고…. 우리 땐 잠수함이었는데, 안 그래요?” “난, 헤엄쳐서 왔어.”

세상이 참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은 확실히 변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아침에 흙 묻은 신발을 신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사람’을 식별해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지 않는다. 간첩 신고번호가 113이 아니고 111이 된 지도 오래다. 산 넘고 헤엄치고 잠수함을 타고 남파되는 무장공비 이야기도,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죽었다는 이승복 어린이의 비극도 멀고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망명 당시 “남한 내에 고정간첩 5만명이 암약하고 있으며 특히 권력 핵심부에도 침투해 있다”고 밝혔지만, 분단 60여년이 흐른 지금 ‘간첩’은 놀이공원 사진사만큼이나 시대와 멀어진 직업처럼 느껴진다.

 

 

10월3일 개봉을 앞둔 김명민 주연의 영화 <간첩>은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간첩 이야기다. 남파 22년차 간첩 ‘김과장’(김명민)에게는 이념보다 생활이 더 급박한 과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령이 북으로부터 10년 만에 떨어진다. 남으로 망명한 북한 외무성 부상 리용성의 “모가지를 따오라”는 것이다. 그는 ‘모가지’ 따위엔 관심이 없다. 대신 망명한 리 부상이 정부로부터 받았을 ‘돈’만 노린다. 이 과정에서 김과장은 어떤 사상적 갈등과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간첩’이란 별다른 선택거리가 없어 시작했지만 딱히 그만두기도 힘든 직업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남북의 분단 상황이 잉태한 ‘간첩’은, 냉전시대가 낳은 ‘스파이’와는 달랐다. 그리고 그들을 다루는 영화 역시 다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스파이 영화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007 시리즈’는 매회 눈이 휘둥그레질 신무기로 무장했다. 절대악을 소탕하는 이 스타일리시한 쾌남은 상대 스파이를 제거하고 적의 요지를 폭파하는 순간 어떤 두려움도 연민도 없었다. 오로지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고 ‘살인면허’를 손에 쥔 영웅들의 짜릿한 오락만이 존재했다.

▲ 90년대 ‘쉬리’와 ‘리철진’
북의 궁핍한 실상 드러내


하지만 한국 영화에서 간첩은 완벽한 타인으로 위치하기 힘들었다. 총구가 서로를 향하는 순간 관객들은 모두가 다칠 것을 예감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니들이 한가롭게 그 노래를 부르고 있을 이 순간에도 우리 북녘의 인민들은 못 먹고 병들어서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어. 새파란 우리 인민의 아들 딸들이 국경 넘어 매춘부에 그것도 단돈 100달러에 개 팔리듯 팔리고 있어. 굶어 죽은 지 새끼의 인육마저 뜯어먹는 그 애미, 그 애비를, 너는 본 적이 있어?” 1998년작 <쉬리>의 특수8군단 소좌 박무영의 이 울부짖음 앞에서 당시에 어떤 관객도 웃을 수 없었다. 그것은 최민식의 열연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궁핍한 조국에 대한 연민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그들이 결코 남이 되지 못했던 세대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듬해 등장한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1999년) 역시 웃음에 쓴맛을 숨겨두고 있었다. 리철진(유오성)은 조국의 식량난 해결을 위해 남한의 ‘슈퍼돼지 유전자’를 북으로 가져가기 위해 남파된 대남공작부 요원이었다. 그는 자본주의와 자유의 달콤함 속에서도 북에 대한 의리를 놓지 않지만 그의 조국은 리철진을 버린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를 제거하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 2000년대 남북화해 시대
방황하는 ‘이중간첩’ 그려


21세기 충무로는 남과 북 어디에서 속할 수 없었던 ‘광장에 선 사나이’를 호출한다. 2003년 한석규가 고심 끝에 선택한 <이중간첩>은 남한으로 위장귀순한 림병호가 남쪽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이중간첩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스릴러에서 첩보, 멜로까지 다양한 장르로 무장했지만 <이중간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싸늘했다. 이후 <그녀를 모르면 간첩>(2004년) 등이 만들어졌지만, 간첩은 낡고 재미없는 소재였다.

이후 변화의 징후는 장훈 감독의 <의형제>(2010년)로부터 시작되었다. 국정원에서 파면된 한규(송강호)와 북에서 버림받은 공작원 지원(강동원). 다른 부모에서 나왔지만 모두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들은 ‘의형제 맺기’라는 의식으로 영화를 마무리짓는다. 이데올로기의 무게추가 덜어지고 가족적 연대가 희미해진 세대의 간첩영화에는 자연스럽게 액션과 코미디 같은 오락적 요소들이 깃들었다.

“간첩 이야기이긴 하지만, 간첩을 빗대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간첩>의 우민호 감독의 말은 ‘간첩’이라는 존재가 현재 대중 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인기 웹툰을 영화화한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김수현·박기웅·이현우 등의 캐스팅을 완료하고 10월 중순 크랭크인을 기다리고 있다.

▲ 2년 전 ‘의형제’ 변화 신호
액션·코미디로 현실 빗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장철수 감독은 자신의 차기작을 “젊은 간첩들의 이야기, 분단이 멀게 느껴지고, 간첩 역시 점점 비현실적인 존재로 느껴지는 가운데 다다른 상상력”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장 감독은 “분단의 아픔이 그 세대들에게 그치지 않고 다음 다음 세대들에게까지 고스란히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에 슬픈 생각이 든다”며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단순한 꽃미남 간첩 이야기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분명 세상은 변했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다. 웃음으로 무장하고 액션으로 유혹한다고 해도 한국의 간첩영화는 여전히 ‘007’로 소비될 수 없다.

 

출처: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252103395&code=960401